『조디악(Zodiac)』은 실존했던 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로, 1960~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공포에 몰아넣은 미제 사건을 정교하게 재현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닌, 진실을 좇는 인간의 집착과 사회적 무력감을 그린 심리극에 가깝습니다. 조디악 사건의 중심에는 한 명의 실체 없는 범인이 있었고, 그의 정체를 향한 의혹과 추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영화가 제시하는 다양한 단서와 경찰 수사의 한계,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추리하는 이유를 세 가지 키워드로 풀어보겠습니다.
조디악의 끝없는 의혹, 정체 없는 실루엣
조디악 사건이 다른 범죄 영화와 가장 구별되는 점은 바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이라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조디악은 수차례 편지와 암호문, 전화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지만, 단 한 번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도 그는 등장하되 얼굴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으며, 다양한 인물들이 번갈아 범인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관객에게도 끊임없이 ‘누가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특히 의심받은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아서 리 앨런(Arthur Leigh Allen)은 많은 정황증거로 인해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결정적 증거가 부족해 기소되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이처럼 수많은 의심과 실망, 그리고 무력함의 연속을 보여주며, 범인을 쫓는 이들의 정신적 소모를 세밀하게 표현합니다. 의혹은 영화 전반에 걸쳐 팽팽히 유지됩니다. 조디악의 상징인 원 안의 십자 문양, 예고된 살인, 언론을 이용한 조작 등은 실존 사건의 디테일을 충실히 반영하며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퍼즐 조각들은 끝내 하나로 맞춰지지 않고, 관객의 머릿속에만 남겨져 영화가 끝난 뒤에도 생각이 이어지게 만듭니다. 조디악의 실루엣은 단지 범인이 아닌, 시대가 만들어낸 불안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치밀한 추리, 해답 없는 수사
영화 『조디악』의 또 다른 중심축은 ‘추리’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해결 과정을 넘어, 추리라는 행위를 집착에 가까운 탐구로 확장시킵니다. 주인공인 만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직업과 상관없이 조디악에 집착하며 하나하나 단서를 찾아 나가고, 경찰들과도 긴밀하게 협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추리가 결코 통쾌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추리가 깊어질수록 해답은 더욱 멀어지고, 관객은 실마리가 아닌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마치 스스로 수사에 참여하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되며, 실제 수사 기록과 기사, 암호문 등이 영화에 그대로 등장해 사실감을 더합니다. 로버트의 추리는 점점 일상까지 침범하고, 가족과의 관계까지 흔들립니다. 이는 추리가 단순한 지적 놀이가 아닌, 인생 전체를 삼킬 수 있는 위험한 집착일 수 있음을 경고하는 부분입니다. 조디악이라는 미지의 대상에 대한 강박은 결국 인간 심리의 깊은 불안과 연결되며, 우리가 진실을 마주하려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경찰의 한계와 시대적 배경
조디악 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은 데에는 단순히 범인의 교묘함만이 아니라, 당시 수사 체계의 한계도 큰 원인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점을 매우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경찰 간의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았고, 관할 구역마다 수사 방식이 달랐으며, 사건 관련 문서와 증거가 제대로 통합되지 않았던 당시의 혼란이 사건 해결을 방해합니다. 특히 영화에서는 세 명의 형사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디악 사건에 접근합니다. 형사 데이브 토시(마크 러팔로 분)는 냉정하고 집요하게 수사하지만, 점점 벽에 부딪히며 좌절을 겪고, 다른 형사들은 언론의 압박, 내부 행정의 혼란 등으로 인해 수사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이는 당시 미국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반영하며, 조디악이라는 존재가 단지 한 명의 범인 그 이상임을 시사합니다. 또한 영화는 1970년대 미국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조명합니다. 베트남전, 시민운동, 대중매체의 영향력 확대 등 복합적인 변화 속에서 조디악은 언론을 무기로 삼고, 사회의 공포심을 조종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는 범죄 그 자체보다도, 사회가 범죄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시스템의 허점이 범인을 키우는 구조임을 드러냅니다.
『조디악』은 끝까지 범인을 특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미완성의 결말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조디악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그가 남긴 메시지와 상징 속에서 인간의 불안과 진실에 대한 갈망을 되짚게 됩니다. 영화는 ‘진실을 아는 것’보다 ‘진실을 찾으려는 과정’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조디악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며, 우리는 그를 통해 수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이 미스터리, 당신은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