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고, 종교와 미신, 인간 심리와 집단 공포를 교차시켜 관객의 해석을 유도하는 이 영화는 공개 이후 지금까지도 수많은 담론을 낳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귀신, 의심, 공포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곡성』의 미스터리를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곡성안에서 귀신인가, 인간인가? 정체 없는 존재의 공포
『곡성』은 전통적인 귀신 이야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정체’를 다룹니다. 일본인(쿠니무라 준)이 등장하면서 마을에는 원인 모를 연쇄살인과 환각, 피부병 증상이 퍼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그를 ‘귀신’ 혹은 ‘악마’로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끝까지 그가 귀신인지, 인간인지, 혹은 단순한 외지인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호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듭니다. “귀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악은 외부에서 오는가, 내부에서 자라는가?” 영화가 제시하는 공포는 단순히 시각적 자극이 아닌, 존재의 정체를 알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공포입니다. 귀신이 눈앞에 확실하게 등장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미신, 괴담, 소문들이 관객의 심리를 압박합니다. 이와 더불어 굿 장면이나 무명의 등장 등 전통 민속신앙과 초자연적 설정은 ‘귀신’이라는 개념이 단지 개인의 환각이나 상상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곡성』은 귀신이라는 존재를 현실과 경계가 없는 형태로 제시하며, 한국 사회에서 귀신이란 단지 죽은 자의 혼령이 아닌, 공동체 불안과 무지, 두려움의 집합체임을 말합니다.
믿을 수 없는 모든 것, 의심이 낳는 혼란
『곡성』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누가 악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영화의 태도입니다. 주인공 종구(곽도원)는 경찰로서 합리적인 해결을 추구하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그는 점점 의심과 두려움에 빠져 이성을 잃게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인간 내면의 혼란과 감정적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처음엔 외지인에 대한 막연한 의심에서 시작된 대응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고, 종구는 무명의 조언과 주변인의 말에 휘둘려 딸을 구하고자 점점 파멸로 향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결정의 근거는 불확실하고, 결국엔 ‘믿지 말았어야 할 것’을 믿고, ‘지켜야 했던 것’을 의심한 결과를 낳습니다. 이처럼 『곡성』은 귀신이나 악령보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의심과 공포가 더 무섭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확인하기보다 불안을 해소하고 싶어 하며, 그렇게 선택된 믿음은 언제나 파국을 부릅니다. 의심은 곧 편견으로, 그 편견은 폭력으로 이어지며, 이 구조 속에서 『곡성』은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집단적 광기로 변모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체감하는 공포, 정서와 시각이 만든 무서움
『곡성』은 외형적으로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습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나 잔인한 시각적 자극보다는, 오랜 시간 누적된 불안과 긴장감을 통해 공포를 구성합니다. 이는 나홍진 감독 특유의 리듬감 있는 연출과, 현실적 배경에 초자연적 요소를 덧씌우는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전라도의 실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자연과 풍경, 습기 가득한 공기, 안개, 비, 밤의 적막함 등 한국 시골의 정서적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냅니다. 이러한 현실감은 영화 속 사건들이 실제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유발하며, 관객의 심리적 경계선을 무너뜨립니다. 공포는 상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질 때 더욱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또한 굿 장면의 박진감, 무명의 침묵, 그리고 외지인의 표정 변화 등은 사운드와 시각적 연출을 통해 심리적 압박을 강화합니다. 나홍진 감독은 대사를 줄이고, 대신 이미지와 소리로 분위기를 조율하며,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의 정적을 가장 무서운 순간으로 만들어냅니다. 결국 『곡성』은 ‘무섭다’는 감정을 외부 자극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만들어내도록 유도하는 영화입니다. 이 공포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머릿속에 남고, 해석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곡성』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해석의 퍼즐을 관객에게 넘기는 열린 텍스트에 가깝습니다. 귀신이 정말 존재하는가, 무명이 신인가 악인가, 외지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 수많은 질문이 제시되지만, 영화는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구성은 관객에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곡성』의 힘입니다. 이 작품은 공포라는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를 되묻게 하고, 무지와 의심, 두려움이 만들어낸 집단 심리극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곡성을 본다면, 당신은 같은 해석을 하게 될까요? 아니면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게 될까요? 『곡성』은 단지 무서운 영화가 아닌, 한국 영화사에 남을 해석의 미궁이자, 진정한 심리적 공포의 정점입니다.